금화사(계당 최흥림, 남명 조식 ,최 운, 성 운, 성제원 다섯분의 위패를 모신 서원)와 금적산
부엌에 있는 두멍
보은에 화순 최씨가 뿌리를 내린것은 계당 최흥림 선생께서 1548년 을사사화를 피하여 금적산 밑에 은둔 계당을 짓고 성리학을 공부하며 후학을 양성한때 부터로 본다. 거현(거리고개) 광촌 선곡(서느실)은 화순최씨 부정공파 집성촌이다. 충청북도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 이곳의 옛지명은 서느실이다. 필자는 이곳 기후가 여름에도 매우 서늘하여 서느실로 불리지 않았나 생각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이곳 서느실은 필자의 6대조인 덕휘공(광심씨)이 중시조인 곳이다.그후 5대조 선와공(치휘씨)으로 이어 내려오며 재물도 많아지고 그후 고조부(봉진씨)때는 재물이 더늘고 공직(종사랑)에도 나갔다. 증조부 께서는 고종때 통훈대부 행 사헌부 감찰을 지내셔서 이집의 택호는 감찰댁이다. 또 보은 최부자집이라 불렸으며 천석군 집이라 알고있다. 이곳 보은에서는 화순최씨라 하지않고 서느실 최씨라고 불렸다. 서느실은 학익포란 지형이라 무거운것을 올리지 못하고 동네가 배 모양이라 집안에 우물을 파는 것을 금기시하여 왔다. 그래서 산소에 비석과 상석이 없으며 부엌에 큰 항아리를 묻고 두멍이라 하였다. 이집(감찰댁)에서 북쪽 약 250미터 외딴곳에 있는 샘(아랫샘)에서 새벽마다 일꾼들이 물지게로 물을 길어와 물두멍에 채워 사용하였다. 금화사는 1814년(순조 14) 계당 후손들과 유림의 건의로 승인받아 1815년에 창건하였다. 이곳은 최 운, 성 운, 조 식, 성제원, 최흥림 ,다섯분의 위패를 봉안하고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던 서원이다. 1871년(고종8)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17년 지방 유림회의 주선으로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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