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판서(참판)댁; 어윤중 생가는 지금 최재한 가옥이다. 아버지께서 91년전(1922년) 큰댁에 양자오시고 75년전 네째 숙부(최숙하씨) 4살때 큰댁 할머니(순천 김씨)께서 이집을 구입하시여 그후부터 생가댁 식구들이 사셨다고 한다. 큰댁 사랑에는 생가 할아버지께서 기거하시며 서느실 최씨를 대표하여 대 내외적 일을 보셨고,안채에는 큰댁 할머니가 계셨다. 큰 아버지(최정하씨)께서는 딸만 두시고 일찍 돌아가셔서 세째 작은 아버지(최순하씨)께서 생가 할머니 모시고 이댁에서 사셨다. 그 시절에는 큰댁 작은 사랑방과 생가댁 광채 사이에 문이 있어 한집으로 살았다. 그후 서로 통하던 쪽문도 막게되고 지번도 분리하여 사촌 동생인 최재한이 물려받아 관리하고 있다.
그 옆집, 개멱댁(작은 고조부댁)은 어참판 소실이 살던 집이라 한다. 어윤중이 갑오개혁후 아관파천시 사망하고 그후 개멱댁 증조부 대에 이집으로 이사하여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이댁에는 옛 도자기등 옛 물건이 많았으나 몇년전 도둑이 광 뒷 벽체를 뚫고 모두 훔쳐갔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방범이 옛 가옥 유지 만큼이나 중요한것 같다. 우리집은 물론 생가댁도 그동안 십 수차례 도둑이 들어 장롱 함 유기 동전 등등 많은 것을 잃었다. 가옥 유지 뿐만 아니라 유물 보존 대책도 있어야 되겠다.
최재한 가옥 사랑채;근래에 복원되었으나 많이 축소되었다.
최재한 가옥 안채
최재한가옥 광채, 담넘어 보이는 집이 큰댁 광과 안채 (비가 새서 푸른 비닐로 덮어 놓았다)
정면에 보이는 담이 큰댁과 생가댁이 통용하던 쪽문 자리, 담넘어 보이는 기와집이 큰댁 사랑채
오른쪽 기와집이 최재한가옥 사랑채,왼쪽 슬레이트집이 개멱댁 광채, 벽을 뚫어서 오른쪽 지붕이 내려앉았다.
개멱댁 사랑채, 이집은 오 륙십년전에 다시 지었다고 들었다.
개멱댁 안채 뒤주 광채
작은 아버지 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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